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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 법성포는 영광굴비로 더 유명하다.
그렇다. 지도상에 법성포가 어디쯤 있는지는 몰라도 ‘영광굴비’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행정 구역상 전라남도 영광군 법성면으로 서해 남쪽 전라북도 고창군과 경계에 위치한
이 작은 포구가 예사 마을이 아니다.
법성포는 우선 굴비를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고려 인종의 외조부이자 장인이었던 이자겸이 난을 일으켰다가 실패해 법성포로 귀향와 맛 본 굴비를
임금님께 진상하며 결코 비굴하지 않다는 의미로 비굴을 거꾸로 써서 ‘굴비’(屈非)라는 이름이 생겼다는
‘법성포굴비’는 (요즘 법성포 사람들은 ‘영광굴비’를 이렇게 바꿔 부르고 있다) 구수산에 진달래가
만발할 때 칠산바다에서 잡힌 알배기 참조기를 일년 이상 간수를 뺀 천일염으로 섶간을 해 법성포 특유의
갯바람으로 말린 것으로 그 맛을 글로 설명할 재간이 없다. 오죽하면 ‘홍어는 썩힐수록 맛이 나고 굴비는
법성포에서 말려야 제 맛이 난다’ 라고 했을까. 요즘은 칠산바다에서 잡히는 참조기가 거의 없지만 그래도
법성포 사람들은 고집스럽게 중국산 조기를 쓰지는 않는다. 법성포 굴비에 대한 법성 사람들의 대단한
자부심이 법성포굴비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시외버스 터미날 부근에서부터 이어지는 줄잡아 이삼백 개의 굴비가게에 잘 엮어진 굴비가 걸대에 걸려
해풍을 쐬며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나 퇴적층이 쌓여 깊게 골이 팬 바다 풍경이 한가롭지만 운 좋게
물 때가 맞은 시간이면 유명한 한정식 집 ‘일번지’ 앞 선착장 부근에는 작은 어선들이 싣고 들어온 ‘자연산’
생선들을 사기 위해 광주 등지에서 몰려든 사람들로 노천장이 서 북적거리고 갈매기 떼도 포구 분위기를
한층 돋구어 준다.
즐비한 굴비가게 길 중간 쯤에서 우회전 하면 영광을 유명하게 만든 영광원자력발전소 쪽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수백년 된 느티나무 군락지인 숲쟁이공원이 있고 팔각정에서 내려다 보는 포구의 전경이 정겹다.
이 숲쟁이공원에서 매년 성대한 단오제가 열린다.
동해안의 강릉단오제와 쌍벽을 이루는 서해안의 법성포단오제는 그 규모나 내용이 대단하다.
강릉단오제는 시(市) 단위, 관(官) 주도의 단오제로 언론 보도를 통해 잘 알려져 있는 반면
법성포단오제는 면(面) 단위, 순수 민간 주도로 치루다 보니 아직도 일반에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400년 전통의 서해안 최대의 단오제로서 법성포 사람들은 조상 대대로 맥을 이어 온 단오제에 대한
자부심이 남다르다 (법성포단오보존회 http://www.danoje.co.kr).
올해도 6월5일 굴비시식회와 전국마라톤대회를 시작으로 단오날인 6월11일 까지 인의제(산신제),
당산제, 용왕제, 한제와 같은 각종 제전행사와 선유놀이, 그네뛰기, 씨름, 국악경연 등 다채로운
민속놀이 행사가 펼쳐진다. 특히 6월9일 법성포 앞 바다에서 펼쳐질 용왕제와 과거 조세를 실어
나르던 법성포의 번창했던 시절을 되새기며 수십 척의 배들이 선상에서 풍악을 울리며 즐기는
뱃놀이인 선유놀이는 놓치기 아까운 좋은 구경거리다.
용왕제가 열리는 곳에서 계마항 쪽 조아머리(옛 구시미 나루터)에는 백제불교 최초 도래지 성역화
공사가 부처님 오신 날 전 준공을 눈 앞에 두고 한창 진행 중이다.
법성포는 우리나라 불교의 최초 도래지다.
백제 침류왕 원년(384년) 인도승 마라난타 존자가 중국 동진을 거쳐 백제에 불교를 전하면서 최초로
발을 디딘 곳이 바로 법성포인 것이다.
법성이라는 지명도 불교를 뜻하는 法과 성인을 뜻하는 聖자일 뿐만 아니라 인의산, 대덕산,진내리 등
지명에 불교 용어가 많고 법성포에서 광주 쪽으로 가다가 영광읍을 지나 불갑산 기슭에 마라난타가
세운 우리나라 최초의 절 불갑사(佛甲寺)가 있으며 대웅전은 보물 제830호로 지정되어 있다.
또한 법성포 바로 옆 마을 백수읍에는 소태산 박중빈이 원불교를 창시한 영산성지가 자리하고 있어
이래 저래 법성포는 불교와 뗄레야 뗄 수 없는 인연을 갖고 있는 고장인 셈이다.
기왕 법성포를 찾아 왔다면 꼭 둘러 봐야 할 곳이 있다.
요즘 ‘마파도’라는 영화로 더욱 유명해진 백수해안도로다. 시외버스 터미날에서 광주 쪽으로 나오자 마자
백수해안도로라는 이정표를 보고 우회전하면 구수산 중턱을 넘는 호젓한 산길 이 나오고 산길을 내려서면
서해안을 끼고 도는 19Km의 아름다운 드라이브 코스가 이어진다. 전형적인 리아스식 해안으로 굴곡이
심하고 거북바위, 모자바위 등 기암괴석이 눈부신서해 바다와 어우러져 절경을 이룬다.
‘오지게 빡센 섬’이라는 가상의 섬 ‘마파도’ 촬영지 동백마을 입구에는 영화촬영지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고
전망대와 계단이 있어 기암괴석 등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 백수해안도로에서 건너 보는 법성포구도
정겹지만 칠산바다로 잠기는 낙조를 바라 보는 황홀함은 좋은 추억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법성포 여정을 여기서 끝낼 일은 아니다.
남도 어디를 가도 그 고장 특유의 먹거리가 있는데 법성포까지 왔다가 법성포굴비를 맛 보지 않고
돌아 간다면 후회할 일이다. 전라남도가 지정한 ‘남도명가’ 중 하나인 ‘일번지식당’ (061-356-2268)에서
대여섯 가지 종류의 굴비를 곁들인 진수성찬 한정식을 맛보는 일은 법성포를 찾은 즐거움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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