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속의 낭만 - 소래포구(蘇萊浦口)
항구와 포구는 어떻게 다를까? 사전적 의미나 행정적 차이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항구 보다
포구라는 단어가 훨씬 좋다. ‘소래항’ 보다는 ‘소래포구’가 더 정겹지 않은가? 포구에는 분명
포구만의 정서와 낭만이 있다. ‘소래포구는 내 고향 법성포와 닮은 꼴이다 / 뱃사람, 통통배,
갯벌, 갈매기 / 갯내음, 해풍마저도 닮은 꼴이다…….’ 80년대 초 틈만 나면 소래포구를 찾아
다니며 사진을 찍던 시절 메모장에 남겨 놓은 글이다. 포구에서 태어나 자란 내게 소래포구는
고향처럼 포근한 곳이었다. 수 년 만에 다시 찾아가 보는 포구, 옛 기억을 더듬기 위해 일부러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전철1호선 주안역에서 내려 38번 버스를 타고 40여분쯤 걸려 옛 수인선
소래역 자리에 있는 종점에 내린다. 코 끝에 와 닿는 비린내, 포구에서만 맛 볼 수 있는 느낌이다.
버스 종점 앞 팽나무 아래 평상에서 더위를 식히고 있던 이필순 할머니(77세)는 열 아홉 살에
녹번동에서 소래로 시집올 당시 겨우 4가구가 살았다며 그 동안 많이 변해버린 포구의 옛 얘기로
나를 붙든다. 이승만 대통령 시절에 심어 졌다는 팽나무의 결만큼이나 깊게 패인 할머니의
주름 속에 포구의 흔적들이 묻혀 있다. 사라져 버린 소래역과 철길 주변 그리고 옛 한국화약 터에
대규모 재개발 공사가 한창이다. 대형 쇼핑몰과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다니 포구의 모습은 또 한차례
변신을 하게 될 것이다. 지금도 대형 아파트 단지와 고속도로 속에 갇혀 있는 작은 포구의 모습은
기형적이면서도 도심 속의 별천지처럼 느껴지는데 재개발 공사가 끝나고 나면 그 분위기가 어쩔지
궁금하다.
소래포구의 역사에는 아픔이 묻어 있다. 소래라는 지명도 신라 무열왕 7년(660년) 당나라 소정방이
백제를 공략하기 위해 나당연합군을 이끌고 중국 산동성 래주(萊州)에서 출발하여 이곳에 이르렀다고 해
소정방의 소(蘇)와 래주의 래(萊)에서 유래 되었다는 설이 있고 일제 강점기에는 화약의 원료인
양질의 천일염을 생산하는 소래염전의 소금을 수탈하기 위해 1937년 개통된 수인선으로 인해
발전한 포구다. 소래염전에서 생산한 소금을 경향 각지에 내다 판매하는데 있어 수인선이 톡톡히
한몫을 한 것이다. 수원역과 남인천역을 운행하던 수인선 협궤열차는 만성적인 적자로 1994년에
결국 운행을 중단하고 지금은 겨우 소래포구와 월곶을 잇는 철교만 남아 있다. 철교는 건너편
월곶에 들어서 있는 고층아파트 단지와 묘한 조화를 이루고 썰물에는 갯골 바닥까지 드러낸 갯벌
위로 교각이 흉물스럽게 드러나지만 관광객들에게는 추억의 볼거리다. 철교에서 바라보는 서해
낙조도 일품이고 사람들이 던져주는 과자부스러기를 받아 먹기 위해 철교 위를 비행하는 갈매기 떼도
도심 속의 색다른 풍경이다.
예전에는 선착장과 상가(횟집) 사이에 제법 넓은 도로가 있었는데 그 도로마저 상인들이 점령해버려
포구는 온통 북새통이다. 바닷가 쪽에 조금 남아 있는 여유 공간마저 즉석에서 회를 떠 자리잡고 앉아
즐기고 있는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선착장에 정박 중인 어선 그늘 아래에도 어김없이 관광객들로
붐빈다. 평일에도 수 천명, 주말이면 만 여명 이상이 다녀 간다니 예전의 한가롭던 포구의 모습은 온데
간데 없다. 80년대 초 단골로 드나들었던 ‘바다회집’ 2층에서 바라보던 포구의 모습은 거리를 꽉 메운
파라솔들에 시야가 가려 더 이상 볼 수가 없다. 당시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큰아들(황대규)이 아버지의
대를 이어 어엿한 사장님으로 성장해 포구를 지키고 있는 모습이 대견스럽다. 소래포구를 유명하게 해준
것은 누가 뭐래도 ‘새우젓’이다. 김장철이면 관광버스까지 대절해 새우젓을 사러 몰려 들던 도회지
사람들의 입 소문을 통해 소래포구의 명성이 형성된 셈이다. 서울에서 한두 시간 남짓 거리에 들려
싱싱한 회를 맛 볼 수 있고 품질 좋은 젓갈이며 꽃게 등 각종 해산물을 저렴한 가격에 사갈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소래포구의 젓갈이 맛 좋은 이유는 소래염전에서 생산되는 질 좋은 소금 덕이었다. 법성포
굴비가 옆 동네 염산에서 생산되는 천일염과 어울린 것과 같은 이치다. 어시장 수협지소 쪽으로 길게
자리잡고 있는 젓갈상가는 대낮인데도 상가마다 훤히 불을 밝히고 각종 새우젓과 멸치젓, 황석어젓 등을
드럼통 가득 채워 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분위기가 이색적이다. ‘오씨상회’의 인상 좋으신 김선분씨는
새우젓은 잡은 시기에 따라 오젓, 육젓, 추젓 으로 구분하고 7,8월에는 산란기라서 금어기라고 자세히
설명을 해주신다. 젓갈상가 밖 노천상가에는 살아있는 방게며 각종 조개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팔딱거리는 산 새우가 한 되에 만원씩 순식간에 동이 난다. 어릴 적 어머니께서 끓여 주시던 새우 매운탕
맛이 떠올라 군침을 삼킨다. 한나절을 돌아 다녀 시장기가 도는데도 혼자서는 좀처럼 밥을 사먹지 못하는
탓에 생수 한 병으로 허기진 배를 채운다. 곽재구가 ‘포구기행’에서 ‘선창의 한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혼자 먹는 밥맛의 깊이를 아는 이는 예술가가 아니면 육체 노동자다’ 라고 했는데 나는 이것도 저것도
아니다. 선창에서 혼자 먹는 밥맛은 어떤 것일까. 언제고 꼭 한번 선창에서 혼자 밥을 먹어 보고 싶다.
80년대 초 바닷가 아이들의 놀이란 게 별거 있었겠는가. 한 여름 땡볕 아래 갯벌 웅덩이에서 발가벗고
수영하며 놀던 그 아이들도 이제 40세 안팎의 어른들이 되어 포구 어디선가 성실한 삶을 꾸리고 있을
것이다. 당시의 갯벌 자리에는 도로가 뚫려있고 건물들이 들어서 있어 옛 모습은 사진 속에서나 볼 수
밖에 없다. 갯벌을 가로질러 난 도로 건너편 옛 소래염전은 거대한 해양생태공원으로 변했다.
갯벌체험장과 담수연못, 사진전시관 등이 설치되어 있고 소금생산 과정을 구경하고 체험해 볼 수 있는
견학장도 있다. 넓은 갈대밭 사이로 난 오솔길에 한 무리 자전거 하이킹 족들이 여름 햇살을 가로지르며
달리는 모습이 멋지다. 군데군데 남아 있는 소금창고는 부서지고 허름한 상태 그대로 놓아 두었다면
훨씬 좋았을 텐데 너무 깨끗이 보수해 놓은 탓에 오히려 어색하다. 사진동호회 회원들은 소금창고며
갈대밭을 배경으로 모델 촬영을 하느라 즐겁다.
소래포구도 여느 지자체처럼 매년 가을 축제를 한다. 올해로 7회째를 맞는 소래포구축제는
“바다로! 포구로! 소래로! “ 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오는 10월 10일부터 13일까지 열릴 예정이다.
자세한 행사내용과 일정은 홈페이지(http://www.soraefestival.com)에서 확인할 수 있다.
도심 속에 자리잡고 있는 작은 포구의 낭만이 더 이상 훼손되지 않고 우리 곁에 남아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찾아가는 길
대중교통 : 전철1호선 주안역 7번 출구 - 38번 버스
(동인천역 21번, 27번, 제물포역 21번, 백운역 20번)
자가용 :
경인고속도로->도화 I.C->시민회관->시청->구월동->소래포구
제2경인고속도로 ->남동 I.C ->소래구도로 --> 소래포구
제2경인고속도로 ->시흥 I.C ->월곶방향 --> 소래대교 --> 소래포구
경부고속도로->신갈분기점->신갈/안산 서해안ㆍ제2경인고속도로->
안산분기점ㆍ서창분기점ㆍ남동 I.C->소래포구
인천수협 소래어촌계 : http://www.sorae.or.kr 전화 032-442-68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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