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망망대해에 떠있는 섬이 외롭기 때문일까.
섬에 가면 나도 외롭다. 아니 외로움을 즐기기 위해 섬에 가는지도 모른다.
섬에서 맛보는 외로움은 별나다. 누구라도 혼자서 섬에 가면 외로워지는 것일까.
내가 좋아하는 시인 이생진 선생님의 시 ’고독’은 섬에서 맛 보는 외로움을 이렇게 노래한다.
“나는 떼어 놓을 수 없는 고독과 함께/ 배에서 내리자마자/ 방파제에 앉아/ 술을 마셨다/
해삼 한 토막에/ 소주 두 잔/ 이 죽일 놈의 고독은 취하지 않고/ 나만 등대 밑에서 코를 골았다”
시인은 소주에 취해 코를 골았지만 나는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사진을 찍는다.
석모도에는 50세 전.후 세대들의 사랑의 흔적이 남아 있다. 70년대 서울의 연인들치고
강화도나 남이섬 한번쯤 안가 본 사람 있겠는가. 다양한 놀이문화를 향유하고 있는
요즘 젊은이들이 들으면 웃겠지만 신촌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털털거리는 버스 타고
강화도를 다니던 때 당일치기로 석모도를 다녀 온다는 것이 빠듯하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묵시적 공범이 되어 주었던 추억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막 배를 놓치고 미필적 고의로
섬에서 하룻밤을 지새웠던 사랑. 섬에서 새벽에 울리는 절 종소리를 들어 본 사람은
사랑과 외로움을 안다.
강화도 서쪽 불과 1.5km 바다에 떠 있는 작은 섬 석모도는 강화도의 새끼 섬이라고 할 수 있다.
강화도 외포리 선착장에서 카페리로 10여분이면 석모도 석포리 선착장에 닿는다.
강화대교와 초지대교 두 다리로 경기도 김포시와 연결되어 있는 강화도는 무슨 연유인지
인천광역시에 편입되어있고 이제는 섬이라기 보다 육지처럼 느껴지는데 석모도 역시 2011년쯤
강화도와 연결되는 석모대교가 완공되면 섬의 정취를 많이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여느 포구 선착장과는 달리 무척 한적한 석포리 선착장에 내려 섬을 한 바퀴 돌아보기 위해
왼쪽 방향 길로 접어들면 마치 농촌에 온듯한 분위기의 정겨운 시골 풍경이 이어지고
전득이 고개에 이르면 멀리 서해바다가 한 눈에 들어 온다. 석모도에는 산이 많다.
해명산, 낙가산, 상봉산 3개의 섬이 섬 남쪽으로부터 중앙으로 길게 이어져 있어 행정지명도
삼산면(三山面)이다. 전득이 고개에서 출발해 3개 산 능선을 따라가는 산행코스는 좌우로
바다가 보여 무척 시원스럽고 아름다운 코스다.
전득이 고개에서 내려오다 해명초등학교 앞을 지나 첫 번째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들어가면
강화도 선수선착장에서 카페리로 건너올 수 있는 보문선착장이 있다.
텅 빈 주차장 한편에 대여섯 아낙네들이 이런저런 농축산물을 펼쳐 놓고
여행객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옹색하기 그지없다. 장사라기 보다 그저 소일거리로 나왔다는
할머니의 바구니 속에 빨갛게 익은 보리수 열매며 볏짚으로 싼 달걀 모습이 앙증맞다.
되돌아 나와 보문사 방향으로 직진하다 민머루해수욕장 이정표를 보고 좌회전 하면 길 왼쪽 편에
꽤 넓은 폐염전과 쓰러져가는 소금창고 몇 동이 빛 바랜 흑백사진처럼 펼쳐진다.
한강과 임진강, 한탄강 등과 합류되는 석모도 부근 바닷물의 염도가 천일염 생산에 알맞아
한때 품질 좋고 값 비싼 천일염을 생산했던 ‘삼량염전’이 이제는 추억 속으로 사라진다.
폐염전 자리에 조만간 골프장이 들어 서고 가까이에 있는 어류정항과 민머루해수욕장 등을 아울어
갯벌체험 등을 할 수 있는 어촌체험 관광단지를 조성한다고 한다. 이래 저래 이 한적한 섬이
부산해질 전망이다.
폐염전 앞 길에서 외로움을 즐기는 청년을 만난다. 창호(27세)는 휴가를 얻어 혼자서 카메라 메고
훌쩍 섬을 찾아 왔단다. 좋은 나이에 여자친구랑 함께 오지 혼자 왔느냐는 질문에 대답 대신 해맑은
웃음을 보인다. 혼자 떠나는 여행의 참 맛을 아는 청년과 우연한 동행이다. ‘초록색’을 사진 과제로
받았다며 초록으로 물든 논밭과 풀섶을 향해 진지한 표정이다. 3대에 걸쳐 물려 받았다는
구형 필름카메라를 맨 청년의 모습이 밝고 건강하다. 폐염전 바로 곁에 있는 어류정항은
규모가 작아 오히려 정감 있는 항구다. 막 귀항한 어선에서 요즘 제철인 병어와 밴댕이를
몇 상자 내리자 기다리던 상인들의 손길이 바쁘다. 속 좁은 사람에 비유되며 생선 대접 제대로
받지 못하는 밴댕이도 요즘 강화도, 석모도 일대에서 잡히는 것은 값도 싸고 맛도 일품이다.
부두 한 켠에서 어구를 손질하는 어부들의 건장한 모습이 서해 바다를 배경으로 멋지다.
그들의 노동이 내게는 그림인 셈이다. 어류정항에서 조금 더 들어가면 섬에서 유일한 해수욕장인
민머루해수욕장이 있다. 작고 아담할 뿐만 아니라 썰물 때면 서해안답게 수 만평의 갯벌이
끝없이 펼쳐진다. 영화 ‘취화선’에서 장승업이 김병운 선생과 우연히 만나는 장면의 갯벌이
바로 이곳이다. 또한 강화도 장화리와 더불어 일몰 풍경이 아름답기로 소문난 곳이기도 하다.
민머루해수욕장에서 장구너머항으로 넘어가는 언덕에서 내려다 보이는 해수욕장 전경이 깔끔하다.
언덕에서 내려가면 어류정항만한 작은 항구가 또 하나 있다. 산에서 내려다 보면 그 모양이
장구 같다고 장구너머항이라고 불리는 이 작은 항구는 바다 낚시꾼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곳이다.
선착장에 줄지어 있는 횟집들은 자기 배로 직접 잡은 자연산 횟감만 판다는 뜻으로 ‘통일호’ 등
자기 배 이름을 간판으로 쓰고 있다. 작은 항구에서 되돌아 나와 섬 중앙쯤에 이르면 낙가산
기슭에 보문사가 자리잡고 있다, 사실 석모도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보문사다.
강화도 전등사만큼 잘 알려진 고찰 보문사는 특히 고 육영수 여사가 즐겨 찾은 덕에 더 유명해졌다.
남해 보리암, 낙산사 홍련암과 함께 우리나라 3대 해상 관음 기도도량의 하나인 보문사는
신라 선덕여왕4년(635년)에 회정대사가 창건했다. 대웅전 앞에 자리한 범종각 안에 1975년
고 육영수 여사가 시주한 주조 당시 국내 최대의 범종이 있다. 범종 곁에 매달려 있는 당목의
패인 결에 세월이 묻어 있다. 보문사의 최대 상징은 낙가산 중턱 눈썹바위 밑에 양각으로 새겨진
거대한 마애관음좌상이다. 대웅전 옆 400여 개의 계단을 힘겹게 올라가 좌상 앞에 서니
서해 바다가 시원스럽게 한 눈에 들어 온다.
외로움을 즐기기 위해 혼자 온 주제에 막 배를 놓쳐야 할 이유는 없다.
일부러 막 배를 놓치고 밴댕이 무침에 소주 몇 잔 곁들이면 외롭기 밖에 더 하겠는가.
서둘러서 하리저수지 쪽으로 향한다. 시간을 초월한 사랑 이야기를 다룬 영화 ‘시월애’의
촬영 장소였던 하리저수지에는 은주(전지현)가 살았던 갯벌 위의 집 ‘일 마레’가 태풍으로
부서져 이제는 흔적도 없고 그 자리에 왕새우 양식장이 들어서 있다. 하리선착장 쪽 넓은
갯벌에 칠면초만 무성하다.
작은 섬 석모도를 한 바퀴 돈 셈이다. 석포리 선착장 쪽으로 곧게 뻗은 길가 논에는
잘 자란 벼 위로 초여름 햇살이 따갑게 내려 앉는다. 다음에 석모도를 다시 찾는다면
자전거로 섬 일주를 해보고 싶다. 혼자서 옛 추억을 더듬으며.
찾아가는 길
올림픽대로 – 48번 국도 (김포,강화) – 강화대교 – 외포리 선착장- 석포리 선착장
운항시간 등 정보 : 삼보해운 (http://www.kangwha-sambo.co.kr)
8월 석모도 일몰 시각표
1일 19:42 5일 19:38 10일 19:32 15일 19:27
20일 19:20 25일 19:13 30일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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