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티나 유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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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의 숨결 – 궁(宮) / 김종호 사진집 [조선의 숨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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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숨결 – 궁(宮)

  나이를 먹을수록 더욱 기력이 왕성해지는 사람을 우리는 노익장이라 칭한다.
사진가 김종호가 그렇다. 2018년 봄에 [구름] 사진집을 펴낼 때도 나는 그를
노익장이라고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그는 젊은이 못지않은 열정과 패
기로 충만하다. 어느새 80대 중반에 접어든 그는 2017년 뜻밖의 병마로 생사
의 고비를 넘긴 후 그다음 해 [구름] 사진전을 통해 삶의 의미에 대한 성찰의
속내를 드러냈었다. 그 후 침묵을 지켜오던 그는 몇 해 전 평생의 동반자이자
가장 든든한 삶의 조력자였던 사모님과 이별이라는 힘겨운 고통을 겪었다. 그
이후의 시간은 사진가에게도, 인간 김종호에게도 또 다른 차원의 삶이었을 것
이 분명하다.

  그는 대한민국민국사진대전, 서울특별시사진대전, 대한민국정수사진대전 초
대작가이며 2회에 걸쳐 미국 대륙을 횡단하며 촬영하는 등 열정적이고 성실한
사진가일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제도권 사진계에 많은 공적을 남긴 사진행정
가이기도 하다. 한국사진작가협회 사무국장과 이사를 거쳐 제24대 이사장을
역임하였으며 특히 이사장 재임 기간 중 2006년 제28회 FIAP (the
International Federation of Photographic Art 국제사진예술연맹) 총회에
참석하여 우리나라가 FIAP 정회원국으로 가입함으로써 제도권 사진계가 국제
무대에 정식으로 발을 내딛는 계기를 마련했다. 또한, 2005년 6.15 남북 공동
선언 발표 5돌 기념 민족통일대축전 대표로 평양을 방문하고, 2006년 광복 60
주년 기념 자주평화 통일을 위한 8.15 민족대축전 평양문화유적지를 참관하며
남. 북간 사진 교류에도 큰 노력을 기울였었다.

  우여곡절 오랜 망설임 끝에 평생 카메라에 담아 온 [궁] 사진을 정리해 사진
집을 펴내기로 어려운 결정을 했다. [내 생애 마지막 작업]이 될 것으로 생각
한다는 그의 말의 무게가 이 사진집에 고스란히 배어있다. 삶의 깊이가 사진을
통해 보여지는 나이, 그의 이번 궁 사진들은 나이 듦이 아닌 익어감의 결과물
이며 궁에 대한 기록인 동시에 한 인간이 지나온 사계절에 대한 작별 인사이
자 헌사다. 1997년 펴낸 [한국의 어촌] 사진집은 혈기 왕성했던 50대 중반에
잊혀 가는 우리 어촌의 삶과 어부들의 땀을 갯내음과 함께 담아냈고, 2018년
[구름] 사진집에서는 자연의 무심함과 삶의 덧없음에 대한 성찰과 그 속에 담
긴 아름다움에 대한 경애가 담겨 있었다면 이번 [궁]은 조선 왕조 역사의 숨결
이 스며든 궁궐의 모습들을 통해 시대를 관조하며 한층 더 깊고 차분하다. 어
쩌면 서울이라는 도시가 품고 있는 근원에 대한 사색이자, 한 사진가의 마지막
사명처럼 느껴진다.

  각기 다른 역사와 운명을 가진 서울의 다섯 궁이 사진가의 눈을 통해 다시
살아난다. 조선의 시작과 끝을 함께한 경복궁, 자연과 가장 어울렸던 창덕궁,
고요한 일상의 온기를 간직한 창경궁, 제국의 그림자가 드리운 덕수궁, 그리고
역사의 뒤편에 조용히 서 있는 경희궁까지 그는 이 궁궐들을 수년간 걸으며
찍었다. 단지 궁궐을 ‘찍은’ 것이 아니라, 그가 살아낸 ‘마음의 궁궐’을 정성껏
건축한 결과물처럼 보인다. 단순히 역사적인 건물의 외형적 기록이 아니라 흐
르고 있는 시간으로서 궁의 숨결을 담고 있다. 조선 왕조의 역사와 문화를 품
고 있는 궁 사진은 한 인간이 견뎌온 시간과, 삶을 바라보는 눈의 깊이를 고스
란히 투영하는 예술적 고백이자 영혼의 기록이다. 한 장 한 장의 사진에 담긴
시간은 단지 피사체의 현재를 넘어서 사진가의 삶 전체를 반영하고 있음을 느
끼게 한다.

  궁궐의 담벼락과 처마, 고목과 돌계단, 왕의 의자와 침실의 모습 등이 사진
가의 시선을 만나면 마치 시간 그 자체가 정지한 듯한 고요를 자아낸다. 그 고
요 속에는 단순한 미학이 아닌 생의 무게와 통찰, 그리고 깊은 상실의 그림자
도 어른거린다. 조선 왕조가 수백 년의 흥망 속에서 남긴 이 유산들 앞에서 한
인간의 생과 사, 기억과 사랑이 겹쳐지며 궁궐의 모습이 새롭게 읽히는 기묘한
순간을 만나게 한다. 이것은 살아낸 자만이 보여줄 수 있는 풍경이며, 상실과
회복의 시간을 품은 시각의 유산일 것이다. 또한, 그의 인생 전체를 축약한 예
술적 결정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사진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세상 너머를 생각하게 해주는 이 귀한 사진집
의 발간을 존경과 감사를 담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이 소중한 기록이 앞으로
많은 이들에게 위로와 성찰, 그리고 서울이라는 도시의 숨은 얼굴을 다시 바라
보게 하는 귀중한 사진집이 되기를 바란다. 아울러 그의 사진이 보여주는 깊고
조용한 울림이, 이 시대의 모든 ‘속도’에 지친 이들에게 멈춤의 시간을 선물할
수 있는 조용한 쉼표가 되어주기를 기원한다.


2025년 가을 雄山堂에서
유 병 용 (디지털사진연구소 사진티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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